광해군(光海君) 15년 계해(癸亥) 서기 1623년 3월 15일 밤에 청천벽력 같이 일어난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정변은 그 전날에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자기가 왕위(王位)에 들어서던 소위 세조반정(世祖反正)과 또 중종(中宗)이 연산군(燕山君)을 몰아내고 대신 임금이 되던 중종반정(中宗反正)과 아울러서 조선 역사상 삼대 정변으로 큰 정변들이었다.
그 반정운동(反正運動)에 표면에 나서서 온갖 음모(陰謀)와 활약을 다 하던 사람들은 물론 당시 서인파(西人派)의 김류, 최명길, 이귀, 김자점, 신경진, 이서, 심기원, 장유 등 여러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남자들인데, 홍일점(紅一点)으로 그 이면에 남모르게 숨어 있어서 모든 탐정(探偵)과 모든 알선을 하여 반정운동에 큰 역할을 한 꽃다운 단발(斷髮) 여승(女僧)이 있으니 그는 곧 그 반정에 큰 공신(功臣)으로 유명한 연평부원군 이귀(延平府院君李貴)의 딸인 이예순(李禮順)이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