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염소를 방안으로 몰고 오는 여자와 맑은 날에도 검은 우산을 쓰고 다니는 청년 등 전경린의 소설은 우리 문단에서 보기 힘든, 귀기가 번뜩이는 강렬함과 마력적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쓰는 작품마다 문학상을 수상하고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 모으는 전경린은 지방 도시의 평범한 주부 출신이다. 고향 근처의 지방 대학을 졸업한 후 지방 방송국의 음악담당 객원PD 및 구성작가로 한 3년 일해 봤지만, 학교 시절부터의 꿈이요 존재 이유였던 문학에의 열정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나 지방에서 문학 수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1992년의 어느 날, 소설가 김웅이 창원에서 주부들을 위한 문학강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즉각 6개월 코스의 강좌에 등록한 그는 그 기회를 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보고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실은 문학강좌를 찾기 이전부터, 전경린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완전히 `먹어 없애 치울 때까지` 읽고 또 읽어 완전히 소화해 내는, 그래서 더 이상 좋은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그저 무덤덤해질 때까지 빠져 드는 독서 습벽은 전경린의 문학수업에 커다란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한때 시인이었던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다. 1993년 이들 가족은 마산 옆 진양의 외딴 시골로 이사를 갔다. 꽤나 적적한 곳이었지만 여기서 전경린은 `뭔가가 밖으로 표출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3년 가까이 사람들과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들어앉아 많은 글을 써냈다.
어떨 때는 글이 속에서 흘러 넘치는 것을 채 줏어 담을 시간이 없어 녹음기를 켜 놓고 녹음을 하기도 했다. 후에 녹음을 재생시켜 봤더니, 한편에서는 애 우는 소리가 들리고 또 한편에서는 `얼럴러` 하며 애 달래는 소리와 함께 소설의 줄거리를 읊어 대는 전경린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달 정도로 소설 쓰기에 전념한 세월이었다.
여기서 1995년 신춘문예 당선작을 만들어 내 등단에 성공했다. 전경린이라는 필명은 이때 신춘문예에 응모하면서 사용한 것이며, 그의 본명은 안애금이다.
`모든 자유를 가진 것 같지만,원하는 것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즉 우리 사회 여자들의 갇힌 삶이 전경린의 문학적 관심사다. 여성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많지만, 전경린 문학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은 그 강렬함에 있다. 이미지의 강렬함을 통해 잘 지워지지 않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독특한 기법과 상상력은 전경린 문학의 `남과 같지 않음`을 떠받치는 소중한 자산이다.
문학을 하지 않았던 과거는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고통의 세월이었으며, 글을 쓰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는 전경린은 `결핍된 자`들을 특별히 사랑하며, 그들이 그리워 하는 곳을 문학적 궁구 대상으로 삼고자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