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열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영감이라는 편이 적당할까)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 년이나 위로서, 원래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군으로 밭도 몇 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는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서 마지막에 복녀를 산 팔십 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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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 평양에서 출생했다.
호는 금동. 아버지는 평양교회 초대 장로였던 대윤이며 어머니는 옥 씨이다.
3남 1녀 중 차남으로 소년기에 유복하면서 아버지의 엄한 교육 아래 친구 없는 유아독존적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다.
1912년 평양 숭덕 소학교를 졸업. 숭실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중퇴. 191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학원 중학부에 입학했으나 동경학원 폐쇄로 메이지 학원에 편입하였다. 메이지 학원을 졸업한 뒤 그림에 뜻을 두어 가와바타화학교에 들어갔으나 중퇴했다. 부친상으로 일시 귀국하여 1918년 김혜인과 혼인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1919년 우리 나라 최초의 문예 동인지인 [창조]를 자비로 출판하여 창간호에 처녀작 [약한자의 슬픔]을 발표하였다.
그 후 1921년에 [배따라기] 1925년에 [감자] 등 수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들이 피난간 사이 죽었다.
대표 작품은 [김연실전] [발가락이 닮았다] [광염소나타] [젊은그들] [대수양] [운현궁의 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