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7년(영조 33)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전기(傳記). 실존 인물인 민유신(閔有信)이 죽은 뒤에 그가 남긴 몇 가지 일화와 작자 스스로 민유신을 만나 겪었던 일들을 엮고 뇌(柰 죽은 사람의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글)를 붙인 전기이다. ≪ 연암별집 燕巖別集 ≫ 방경각외전(放揭閣外傳) 에 실려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양(南陽)에 사는 민유신은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종군한 공으로 첨사(僉使)를 제수받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로 벼슬하지 않았다. 민유신은 어릴 때부터 매우 영특하였다. 그는 옛사람들의 기절(奇節)과 위적(偉蹟)을 사모하여 7세부터 해마다 고인들이 그 나이에 이룬 업적을 벽에다 쓰고 분발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한다. 70세가 되자 그 아내가 올해는 까마귀를 그리지 않느냐고 조롱하였다. 민옹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범증(范增)은 기이한 계교를 좋아하였다고 쓰고는 태연하였다. 박지원이 18세에 병으로 누워 음악 ·서화 ·골동 등을 가까이하고 때로는 손님을 청하여 해학과 고담을 들으며 마음을 위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우울한 증세는 풀 길이 없었다. 마침 민옹을 천거하는 이가 있어서 그를 초대하였다. 민옹은 도착하자마자 인사도 나누지 않고 때마침 피리 불던 이의 뺨을 때리고는 "주인은 기뻐하는데 너는 왜 성을 내느냐"고 꾸짖었다. 작자는 웃으며 악공들을 돌려 보내고 그를 맞이했다. 이 때에 민옹의 나이는 73세였다. 민옹은 기발한 방법으로 환자의 입맛을 돋우어주고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었다. 민옹은 어느 날 밤에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마구 골려대고 있었다. 그들은 민옹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어려운 질문을 퍼부었으나 민옹은 끄떡도 않고 대답하였다. "귀신을 보았는가?" "어두운 데 앉은 사람이다." "신선은?" "세상 살기를 싫어하는 가난한 사람." "나이 많은 것은?" "글을 많이 읽은 사람." "가장 맛좋은 것은?" "소금." "불사약은?" "밥."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 이처럼 그의 대답은 쉽고 막힘이 없었으며 자기를 자랑하기도 하고 옆사람을 놀리기도 하여서 모두 웃었으나 그는 얼굴빛도 변하지 않았다. 함께 있던 사람 중에 누군가가 해서(海西)에 황충(蝗蟲 누리. 메뚜기과에 속하는 곤충)이 생겨 관가에서 황충잡이를 독려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민옹은 곡식을 축내기로는 종로 네거리를 메운 칠척장신의 황충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그것들을 잡으려 하나 커다란 바가지가 없는 것이 한이라고 하여 일좌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