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명희 소설의 특징은 농민소설이다. 농촌의 원체험 공간을 살려 농민들의 삶의 애환과 모습을 담는 소재에 따른 장르소설이다. 그동안 한국소설사에서 주목받는 농민·농촌소설의 작가는 이광수와 심훈의 계몽주의적인 농민소설과 이기영, 조명희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적인 농민소설이 있다. 이들 소설은 당대의 역사나 사회를 반영하는 소설들이다. 인간 본위적인 휴머니즘 소설이라기보다는 이념을 먼저 생각한 목적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유정과 이효석의 향토적인 순수소설도 있었다. 그러나 이무영의 농민소설에 이르러서, 귀농을 모티프로 한 소설들로 이념보다는 감동을 염두에 둔 순수문학적 소설로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강해 도피문학이라는 오명으로 질타도 받았다. 그리고 해방 후 김정환, 이동희 등에 이르러 농민소설의 연구가 본격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본격적인 농민소설이 등장하게 되지만, 이농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함께 민중문학이라는 목적문학으로 편향됨에 따라서 일반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명희 소설에서 보여 준 지금, 현재의 농촌의 실상과 농민들의 삶은 식민지 시대나 해방공간의 농촌 사회, 그리고 산업시대 이후의 농촌 사회의 모습이 다른 만큼 그들 소설과는 변별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도시를 탈출하여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시대의 농촌 사회의 현실을 좀 더 미시적으로 디테일하게 투영된다면, 김명희 소설은 우리 시대의 농민·농촌소설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지표가 무엇인가이다. 그 지표를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찾기보다는 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찾아낼 때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_유한근(문학평론가·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 막 솟아오른 태양이 간밤의 무서리를 녹이기 시작할 때, 아버지와 당숙과 나는 산 밑까지 나 있는 농로를 걷고 있었다. 늘 입던 옷차림에 점심 도시락을 챙겨 들고 가까운 산을 찾아 나선 그냥 가벼운 소풍 길이었지만, 아버지로서는 큰맘 먹고 잡은 하루 일정이었다. 모든 농부들이 그러하듯, 아버지는 언제나 일 속에 파묻혀 마냥 바빴다. 그리하여, 가까운 앞산으로 마음먹고 소풍 한 번 가는 일조차도 먹고 살 걱정 없는 부자들 아니면 철부지 아이들한테나 해당되는 사치쯤으로 여겼다. 객지에서 공부하는 자식들의 학비며 하숙비를 마련하는 일은, 가난한 아버지가 떠안은 최대의 과제이며 보람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생활은 그저 쉼 없이 고달픈 노동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이 좀 뜸해져도 동네 사랑방이나 잠깐씩 기웃거려 보는 게 고작이지, 하루 날 잡아 놀이를 떠나는 일 따위하고는 도무지 인연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무릎이 불편한 어머니를 제외한 우리 세 사람은 길을 나섰다. 아침 해가 둥실 얹혀 있는 동쪽 산을 바라고, 텅 빈 논벌과 김장 채소밭과 억새 숲 사이를 걸어갔다. 별 말이 없으나 잔잔하게 유쾌한 기분 속에, 느리거나 빠르지 않은 보통의 걸음걸이로. “인제 가을일도 엔간히 마무리가 된 것 같으니, 동생이랑 함께 산에나 한 번 댕겨와야겠네.” _[행복한 남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