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육사(李陸史)
1904년 경북 안동에서 다섯 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자(字)는 태경(台卿)이다. 그의 필명인 ‘육사’는 자신의 수인 번호 ‘264’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예안의 보문의숙과 대구의 교남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운 뒤, 192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1925년 귀국하여 형 이원기, 동생 이원유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고 이듬해 중국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사 훈련을 받는다.
1927년 국내로 들어와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대구격문사건 등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20여 년 동안 계속해 독립 투쟁을 벌이며 17차례나 투옥되고 고문당하기가 반복된다. 1931년 다시 중국으로 떠나 군사 간부 교육을 받았으며 1933년 몰래 귀국하여 《신조선사》 등의 언론 기관에 근무하면서 ‘육사’라는 필명으로 시를 발표한다.
반복된 투옥과 고문으로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베이징과 서울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으며, 1943년 가을 모친과 맏형의 제사 참석차 서울에 왔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독립을 한 해 앞둔 1944년 1월 베이징의 감옥에서 옥사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21년 안일양과 결혼하여 1941년 무남독녀 이옥비(李沃非)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