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되지 못한 맹자의 정치 이상
2천 년에 걸친
명저로 거듭나다
고전의 정수, 철저히 분석하고 완벽히 재구성하다
고전을 읽어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여러 언론과 대중매체들은 인문 고전의 놀라운 통찰에 대해 시시때때로 보도하며, 국내외 유명 대학들은 학생들이 읽어야 할 고전 목록을 해마다 발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고전을 집어 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대한 분량,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 복잡한 논리 구조, 낯선 시대 상황, 선행되어야 할 배경 지식 등을 극복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은 어렵다’며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간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리즈가 클래식 브라운이다.
2015년 가을, 《군주론》에서 시작된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는 고전을 뜻하는 클래식과 변하지 않는 가치를 상징하는 색인 브라운을 함축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고전을 연구해 온 저자들이 원전 내용을 숙고하고 철저히 분석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200쪽 내외의 포켓 크기 책에 담았다. 이 시리즈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고전은 결코 어렵지 않으며 과거를 뛰어넘어 현재 우리 삶의 문제의식에 밀접하게 연결된 콘텐츠임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여러 나라를 떠돌며 이루지 못한 꿈, 왕도
오늘날까지 공자에 버금가는 사상가로 떠받들어지는 맹자. 그는 전국 7웅(戰國 七雄)이 중국 패권을 두고 다투던 시기에, 작고 보잘것없는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에 노나라로 가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또는 문하생의 문하생이라 전해지기도 함)이 되어 학문을 익히고 여러 사람들과 교제했다. 쉰세 살 되던 해에 양 혜왕의 초빙을 받고 양나라로 가서 첫 유세를 펼쳤다. 당시 유세란 정치 지도자가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으로, 이것이 맹자의 정계 입문이었다. 그 뒤로 맹자는 자신의 생각을 알아봐 주고 실천해 줄 제후를 찾아 국경을 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나라, 추나라, 등나라, 노나라 등 각국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에 기초한 왕도(王道) 정치를 행하라고 유세했다.
그러나 당시는 약육강식 시대였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흩어졌다 모이는 합종연횡(合從連衡)을 반복했고, 권력층은 민중들을 수탈하고 폭정을 가했으며, 서민들은 권모술수로 자기 살 길만 찾았다. 이런 시기에 맹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맹자는 후대를 기약했다. 자신의 유세 내용과 교훈을 모아 저술로 남기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결실이 2천 년 이상 유교 경전으로 읽혀 온 명작 《맹자》다.
잃었던 양심을 되찾고 의리를 좇아라
맹자는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헐벗은 민둥산이 되어버린 우산(牛山)이 과거에는 울창한 산이었듯이, 인간 역시 본래는 착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타락한 정치 지도자들의 수탈과 폭정 때문에 인간 사회가 혼란하고 무질서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나 본성이 애초에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이다.
그렇다면 착한 본성인 양심을 되찾는 길은 무엇인가? 맹자는 ‘마음공부’를 요청하면서 욕심을 적게 내는 것이 본심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자기 본심에 비추어 보아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말라. 자기 본심에 비추어 보아 원하지 않는 것을 소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욕심을 경계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부동심(不動心)이 제시된다. 욕망을 조절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혹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용기를 갖출 때 실현된다. 스스로 반성해서 옳지 못하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간에게라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 반대로 나의 길이 곧고 옳을 때는 어떤 사람이 내 앞을 막고 방해하더라도 그를 물리치고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이자 부동심이다.
또한 맹자는 이익과 의리 사이의 갈등에서 의리를 강조한다. 자신을 초빙한 양 혜왕이 양나라에 이익이 되는 방법을 묻자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최고 지도자인 왕이 내 나라의 이익만 추구하면, 중간 지도자는 내 집안의 이익만 추구하고, 서민들 또한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혼란과 갈등, 반목으로 위태로워진다. 그러니 이익보다 먼저 올바른 도리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왕도, 아니면 방벌이다
맹자가 내세우는 지도자의 길은 공동체 구성원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제나라 선왕이 지도자의 올바른 모습에 대해 묻자 맹자는 답한다. “세상에 관직을 맡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능력을 존중해 주어 당신의 참모로 삼아 일을 하게 해 보세요.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농지를 나누어 주어 당신 나라에 와서 경작하게 해 보세요. 장사꾼들에게는 세금을 징수하지 않거나 감면해 주어 당신 나라에 와서 장사를 하여 시장에 물건을 쌓아 놓게 해 보세요. (중략) 그러면 세상에 포악한 지도자 밑에서 살면서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당신에게 달려와 하소연하려고 할 것입니다.” 맹자가 주장하는 ‘인의에 기초한 왕도 정치’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우선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지장 없게 만들고 나서 그들이 양심을 회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왕도 대신 패도를 행하는 최고 지도자가 있다면 내쫓아 죽이는 것도 용인된다. 이른바 방벌(放伐)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역성혁명(易姓革命)의 단초가 된다. 제나라 선왕이 은나라 주왕의 시해 사건에 대해 묻자 맹자는 답한다. “인의를 해친 흉포하고 잔혹한 자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일개 사나이라고 합니다. 한 사나이에 지나지 않은 주왕을 베었다는 말은 들었으나, 최고 지도자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도자로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흉포하고 잔혹한 일개 사나이로 전락한 지도자는 더 이상 지도자가 아니다. 여기서 맹자의 혁명 사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2천 년을 지나 현재까지 빛나는 지식인, 맹자
본격적인 유세 활동을 시작한 쉰세 살부터 맹자는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현실 정치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이고 위험한 사상을 수용할 제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부분의 왕이 무력으로 나라를 차지하고 패도 정치를 행하던 시기에, 인의의 도덕정신에 기초한 양심 회복과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주장했던 맹자. 그의 사상은 당대에는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제자들과 함께 쓴 《맹자》에 담겨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착한 본성인 양심을 회복하라는 주장, 그렇게 회복한 양심으로 의의 길을 걸어가라는 주장, 자신이 확보한 덕성을 타자에게 교육하라는 주장, 더 나아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라는 주장은 오늘날까지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