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피를 토하듯 절규하던 이상화. 그는 죽는 날까지 식민지의 절망적 현실 아래에서 가장 용기 있고 꿋꿋하게 민족혼의 불멸함을 주장하고 온몸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던 암흑기 최대 저항 시인의 한 사람이다.
저자소개
호: 상화(尙火), 무량(無量), 상화(想華), 백아(白啞)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 혼으로 승화시킨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
1901년 4월 5일(음력)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입학, 1918년 3월 25일에 수료하고, 그 해 7월 서문로 집을 나서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서울 냉동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하였다. 1922년 현진건의 소개로 월탄 박종화와 만나 「백조(白潮)」 동인으로 문단에 참여하기 시작, 창간호에 시「말세의 희탄」,「단조」,「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3월 아테네 프랑세를 수료하였으나,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여 귀국했다. 가회동 이른바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 「나의 침실로」를 《백조》3호에 발표, 1925년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26년, 〈개벽〉 70호에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지만 이 시의 게재로 《개벽》지는 판매 금치 처분을 당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이 시기를 고비로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후 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다가, 1943년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5년째 되는 1948년에,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달성공원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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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시
가을의 풍경
가장 비통한 기원
겨울 마음
곡자사
구고 2장
그날이 그립다
나는 해를 먹다
나의 침실로
단조 (單調)
달밤
대구 행진곡
동경에서
마음의 꽃
말세의 희탄
무제
바다의 노래
반딧불
방문 거절
비음(緋音)
병적 계절
비갠 아침
비를 타고
빈촌의 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서러운 해조(諧調)
선구자의 노래
시인에게
어머니의 웃음
역천(逆天)
오늘의 노래
원시적 읍울
이별(離別)을 하느니……
이중(二中)의 사망(死亡)
이 해를 보내는 노래
저무는 놀안에서
조선병(朝鮮病)
조소
지구 흑점의 노래
청년
초혼(招魂)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통곡
허무 교도의 찬송가
지반정경(池畔靜景)
농촌의 집
구루마꾼
금강송가(金剛頌歌)
몽환병(夢幻病)
극단
달아
쓰러져 가는 미술관(美術館)
독백(獨白)
비를 다오
파란비
만주벌
예지(叡智)
설어운 조화
눈이 오시네
새 세계(世界)
시조
기미년(己未年)
수필
출가자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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