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우리 명시 1

해밀출판사 편집부 | 해밀 | 2016년 10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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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시(詩)는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를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활동에서 출발을 하였다고 봅니다. 거기에 더해 점진적인 진화를 거듭합니다. 언어의 영역에서 사고(思考)의 영역으로 점차 확대가 진행됩니다. 사유(思惟)의 확장은 곧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게 되고, 결국 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 됩니다.
시는 또한 시대를 반영하지요. 우리나라의 초기 현대시는 대부분 나라를 잃은 한(限)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대부분 [임]이라는 메타포로 표현이 되어 있지요. 한국의 현대시가 발전하고 정착을 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지만 임을 잃은 슬픔에 담겨있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詩)가 선택하는 언어는 대부분 은유를 포함한 숨김의 미학에 있는데, 시대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일제치하의 시를 접하노라면 슬픔부터 떠오르게 됩니다.
해방 이후의 시들은 청록파를 중심으로 서정성을 띄게 됩니다. 자연 안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진행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분단의 아픔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서 좌파와 우파의 극심한 이념대립이 분단이라는 현실의 벽과 그대로 병치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무한의 슬픔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서 박인환 시인과 같은 모더니즘이 탄생을 하고 발전을 하지만, 이념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시라는 문학은 양면성을 띠고 있습니다. 무거운 얼굴과 가벼운 얼굴. 사실은 그 두 얼굴도 히잡을 뒤집어 쓴 아랍의 여인들처럼 알아볼 수 없는 그늘 안에 있지요. 더는 대중들이 시를 찾지 않습니다. 무거운 얼굴은 너무 무겁고, 가벼운 얼굴은 천박하다고합니다. 공연예술이 대세를 이루고, 시인들은 더 이상 고개를 내밀지 않습니다.
시는 더 이상 마음을 치유하는 양식이 아닙니다. 힐링이 대세를 이루는 현대사회에서 외면을 받는 시어(詩語)들……. 그 시어들을 찾아내는 시어(詩漁)들의 삶…….

좋은 시를 만나면 영혼이 위로를 받고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한용운 시인은 마음이 편안해 져야 얻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힐링은 편안한 마음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일 것입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 있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한다면 하루에 시 한 수 만나는 게 유익하다는 생각으로 그 근원이 깊은 샘물부터 퍼 나르기로 합니다.
학창시절에 들어봄직한 시인들과 시어들을 만나는 것이 우선은 가장 편안할 듯합니다. 그것들과, 그분들을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젖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보람찬 일일 것입니다.

저자소개

한용운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였으며 호는 만해(萬海·卍海)이다.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1905년 인제의 백담사에 가서 승려가 되고 만화에게서 법을 받았다.
1910년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하는 등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하였다.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이육사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원록(源綠)이다. 예안보문의숙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대구에 있는 교남학교에서 잠시 수학했다.
1923년에 일본에 건너가 동경에 있는 대학을 다녔으며,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3년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 때 그의 수인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택했다고 한다.
1933년부터 시작(詩作)에 전념하여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첫 작품은 『신조선』에 발표한 ?황혼?이었다.
1943년에 독립운동을 위해 다시 북경으로 갔다. 그 해 4월 귀국했다가 6월에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어 수감 중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했다.

윤동주
1917년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42 일본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다시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옮겼다. 학업 도중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목차소개

차례


/ 한용운 /
사랑의 끝판
쾌락
오셔요
생의 예술
명상
칠석
여름 밤이 길어요
당신의 마음
요술
당신 가신 때
사랑을 사랑하여요
두견새
최초의 님
떠날 때의 님의 얼굴
계월향에게
인과율(因果律)
달을 보며
꿈 이 라 면
거짓 이별
당신의 편지
사랑하는 까닭
후회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찬송
꽃이 먼저 알아
참말인가요
님의 얼굴
금강산
그를 보내며
선사의 설법
첫키스
정천한해(情天限海)
어느 것이 참이냐
참아주셔요
복종
당신을 보았습니다
해당화
님의 손길
포도주
꿈과 근심
사랑의 존재
비밀
사랑의 측량
생명
당신이 아니더면
차라리
나룻배와 행인
이별
예술가
나의 길
고적한 밤
가지 마셔요
나는 잊고저
알 수 없어요
이별은 미의 창조
님의 침묵


/ 이육사 /
말실제(失題)
해조사
초가
년보
호수
절정
교목(喬木)
독백
아미(娥眉)
파초(芭蕉)

나의 뮤-즈
황혼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노정기(路程記)
강 건너간 노래
아편
남한산성
청포도
반묘(班猫)
서풍
광인의 태양
일식
서울
소년에게
해후(邂逅)
춘수삼재(春愁三題)
바다의 마음
편복

화제(畵題)
잃어진 고향
광야
자야곡(子野曲)


/ 윤동주 /
서시
자화상
소년
눈오는 지도
돌아와 보는 밤
병원
새로운길
간판 없는 거리
태초의 아츰
또 태초의 아츰
새벽이 올때까지
무서운 시간
십자가
바람이 불어
슬픈 족속
눈감고 간다
또 다른 고향

별헤는밤
기왓장 내외
만돌이
버선본
애기의 새벽
조개껍질
편지
거리에서
곡간(谷間)
공상
꿈은 깨어지고
눈 감고 간다
바다
비애
사랑스런 추억
삶과 죽음
아침
어머니
이런날
코스모스
흰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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