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활론>은 매일신보(1918년)에 발표 게재한 장편의 미완성 논문 비평으로 1926년 박문서관에서 모두 5편의 원고를 엮어 출간한 초판본 작품이다. 신생활론(유교, 기독교사상), 부활의 서광, 자녀 중심론(1918), 혼인에 대한 관견(管見) 4편을 포함했는데, 마지막 편 숙명론과 자력론은 포함되지 않았다.
서문에서 <신생활론>은 당시 매일신문지상에 연재하여 꽤 문제를 일으킨 논문으로 유교를 비판하고 기독교(예수교) 및 천도교, 불교를 비평하여 결국 매일신문사로부터 중지 요청으로 연재가 완결되지 못하였다. 이 일은 저자의 네 차례 사건 중 처음 시발점이 된 필화사건이라고 지적하였는데, 신생활론 사건에서 저자는 ‘애비없는 시골 상놈’이 되었으며, 유림(儒林)에서는 사문난적(斯門亂賊)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였다. 이글은 발표 당시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동양적 전통 관습에서 탈피하여 서구식 문명의 의식을 일깨우고 민족의 물질문명에 변화할 것에 대한 자각을 역설하고 있으며 유교사상과 예수교 사상, 일본의 신문화를 대표한 과학사상에서 목적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른바 우리 민족의 변화를 강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였고, <자녀 중심론>에서는 가부장적인 옛 조선의 관습과 폐습에서 벗어나 자녀의 해방, 독립적 자녀교육을 따져 자녀들의 희망과 중심적 인격체로의 찬미와 완성을 강조하였다.